왜 사람은 거듭나야 합니까? 비록 거듭남의 의미가 우리에게 분명할지라도, 우리는 거듭남의 필요에 대해 또 한번 인상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소극적인 면에서 모든 사람은 아담의 불순종때문에 손상되고 사탄적인 본성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적극적인 면에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하다(Regeneration, 6-7). 도덕, 자아 개선, 가르침은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없습니다. 어떤 것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사람의 마음(17:9)을 개선시킬 수 없습니다. 거듭남만이 사람의 필요의 각 방면들을 충족시킵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사탄적인 본성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사탄적인 본성으로 조성됨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죄악된 외적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죄악된 내적 조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사탄적인 본성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죄를 집니다. 사람은 외적인 행동 때문이 아니라 내적인 요소 때문에 본성상 부패하고 타락되었습니다(위트니스 리, 각주, 623-624).

  •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으로 대표된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그가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 하셨다(17).
  •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은 사탄인 뱀에 속아 그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죄의 본성으로 중독되었다. 이것을 타락이라 한다. 이것 때문에 모든 인류가 부패하고, 손상되고, 사탄의 죄악된 본성으로 조성되었다. 로마서 512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설명한다(5:17-19 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한 우리의 상태를 향상시키려는 의도가 없으십니다. 대신에 그분은 우리의 본성, 우리의 조성을 변화시키시길 갈망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한 우리의 상태를 향상시키려는 의도가 없으십니다. 대신에 그분은 우리의 본성, 우리의 조성을 변화시키시길 갈망하십니다.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더하셔서 우리를 그분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고(벧후1:4) 그분의 생명으로 재조성시키십니다(3:4; 2:20). 사람의 유일한 희망은 타락한 옛 본성을 죽음에 넘기고 장사지낸 후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6:3-9)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 생명을 가지고 있든지 우리에게 신성한 생명이 없는 한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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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근본적인 필요는 하나님의 생명임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가 단지 사탄의 본성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를 충분하고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Regneration, 7). 위트니스 리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인간 생명을 가지고 있든지 우리에게 신성한 생명이 없는 한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10). 이같은 더 높고 더 깊은 인식에 따라 우리는 창세기 3장의 사람의 타락의 문제를 뛰어넘어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셨다(26). 장갑이 손을 담기 위하여 손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졌듯이 사람도 하나님을 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셨다(생명은 하나님을 나타냄).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나무이신 그분을 먹음으로 그분의 영원한 생명을 받아들이기를 의도하셨다(2:17; 3:22-24).

하나님의 갈망과 목적은 사람이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죄가 없더라도 연전히 우리는 그분의 이러한 갈망에 미치지 못합니다. 위트니스 리는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 자신의 창조되지 않은 생명을 얻어 이 생명으로 의해 변화되어 그분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인간 생명이 창세기 3장의 타락으로 인해 부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거듭날 필요가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아담은 죄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생명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 의 생명을 영접하여 거듭나도록 그들 생명나무 앞에 두셨다. 사람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죄 없는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사람,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본성을 가진 사람을 얻는 것이다. (7-8)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명을 떠난 "경건한" 행동은 단지 지속될 수 없는 외적 연기입니다.

 

도덕, 자아 개선, 가르침은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없음

처음 시작부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질적인 필요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거듭남이 필요한 이유는 다만 그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 자아 개선, 윤리 혹은 종교적인 가르침도 결코 이 필요를 채울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처럼 행동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거듭남만이 사람의 내적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숭이가 사람의 흉내는 낼 수는 있습니다. 원숭이는 사람같이 옷 입고 사람같이 행동할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생명은 여전히 원숭이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쩔수 없이 원숭이의 생활로 되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생명을 떠난 경건한 행동은 단지 지속될 수 없는 외적 연기입니다. 사람의 근본적인 필요는 하나님의 생명이며, 이 필요는 오직 거듭남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